잘려나간 두 손가락 중 어떤 것을 붙일라우?

영화 식코(Sicko)는 특별하게 마음에 들었다.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읽어내는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시각에 원천적으로 동의하는 바가 많았기에 벌써 많은 점수를 따고 들어간 영화이기도 했지만, 건강 보험은 내가 미국에 와서 가장 부당하게 느낀 것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반발은 보험과 병원에 관련한 불편함이나 재정적 부담에서 나온 소비자 입장의 일차원적인 반발이다.


그 불편함과 재정적 부담이란 구체적으로,


* 한 달에 일인당 10만원에서 20만원이 넘는 보험을 들어야한다는 것,
* 그런 보험료를 내고도 년기본지불비(out-of-pocket expenses)에 이를 때까지는 진료비나 약값을 내야한다는 것,
* 그러고도 병원을 찾을 때는 이 의사가 내 보험 회사에 등록이 되었는지 알아보아야하고,
* 미리 예약을 해야하고,
* 혹은 주치의에게서 전문 진료 의사를 추천받아야한다는 것.
* 그리고 치과 보험, 안과 보험을 수십 달러씩을 지불하면서 따로 들어야한다는 것.


영화 시코는 미국 건강 보험에 대한 나의 이러한 소시민적인 불만에 대한 설명을 넘어 그 뒤에 가려진 거대하고 치졸한 자본의 논리, 그 폐해를 아주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다큐멘터리이다.


그 폐해의 일반적인 사례란:


* 매달 충성적으로 상당한 금액의 보험료를 내고도 병에 걸리게 되면 제대로 혜택을 받을 수 없음.
* 보험 회사에서 온갖 얄팍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발뺌을 하기 때문에 보험 혜택을 못 받고 스스로 진료비, 약값을 지불해야하는 경우가 허다함.
* 사소한 질병이 아니라 암과 같은 심각한 병이라면 이 때문에 쉬이 가산을 탕진할 수 있음.


제대로 기가 차는 사례:


* 기계 작업을 하다 약지와 중지 손가락이 잘려나갔다. 약지를 붙이는 것은 천이백만원, 중지를 붙이는 것은 육천만원, 한 달에 20만원의 보험료가 없어 보험을 들지 않았던 환자가 그런 거금이 있을리 만무. 기타를 즐겨치는 듯 한 이 환자는 결국 약지를 선택했다. (적어도 약지에는 결혼 반지라도 낄 수 있으니…, 영화에 나오는 사례임)

Sicko Which Finger


난 은연중에 이 영화를 사람들에게 퍼뜨리고 있다. 직장 동료들에게 이번 주말에 보아야할 영화로 추천을 하거나, 혹이 이 영화 보셨수라고 휴식 시간 잡담 메뉴로 자주 써 먹는다. 스스로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미국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할, 그리고 뭔가 행동을 취해야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 영화를 미국의 건강 보험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오늘 출근 길에 한국의 건강 보험등, 공공 사업 분야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발표가 있어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는 있지만, 우린 여전히 세계 거대 기업들의 “합법적인” 인권 유린에 대해 다같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부자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희생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영화는 거듭 일깨워주고 있다.


부연 거리 하나: 린다 피노(Linda Pino) 의사의 증언 (1996년 5월 30일 미국 하원 의원에서)


“1987년 봄, 저는, 내과의사로서, 한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저의 거부로 그 환자는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 일로 어떤 책임도 추궁당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한 일로 회사는 5억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고 회사에서의 저의 탄탄대로에 일조를 했습니다….저의 주된 업무는 제 의학 전문 지식을 회사 재정에 보탬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연할 거리 둘: 영화 자체도 훌륭하지만, 특별판에 추가된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 내용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이 의미있고, 새겨들어야할 것들이고 기억에 남았지만, 단 한 가지만 추려서 적고 싶다. 전 영국 국회의원 토니벤(Tony Benn)의 인터뷰 중 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어느 날 기차을 타고 어디로 가는 있는데 승무원이 와서 ‘고객님들, 표 검사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고객(customer)이 아니라 승객(passenger)이다.’ 승무원이 표를 보더니 ‘아뇨, 당신은 승객이 아니라 고객입니다.’라고 했다.


건강 보험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고객‘인가, ‘환자‘인가? 물론 병원 매뉴얼에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하지만 고객이라는 말은 생각해보자. 이 말에는 당신이 돈이 없다면 당신은 고객이 될 수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고객‘이라는 말은 돈이 없는 사람을 비인격화하는 것이다. …”


그의 말이 옳다. 병원에 가는 사람은 고객이 아니라 환자여야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사람을 고객이라고 한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고객이 될 수 없고 그들은 치료를 받지 못 한다.


돈이 있으면 병원의 고객이 되고, 돈이 없으면 병원의 고객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아픈 사람은 환자이지, 기업이 그걸 빌미로 돈을 벌 수 있는 고객이 되어서는 안된다.


영화 식코를 밀어줄 몇 개의 숫자들:


일년 중 보험없이 사는 기간이 있는 미국인: 5천 4백만여명
보험이 없어 올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인: 만 8천명
세계건강기구에서 보는 미국의 건강 시스템은 37위
건강 보험 관련 로비스트는 미국 하원 의원의 네 배
휴마나(Humana) 회사 사장 마이클 맥앨리스터(Michael B McAllister)의 2006년 연봉은 33억 (휴마나는 위의 린다 피노 의사가 일한 회사)


출처: http://www.michaelmoore.com/sicko/checkup/


* out-of-pocket expenses (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비용: 예를 들어 일년 out-of-pocket 금액이 2000달러라면 보험이 커버되더라도 내가 쓰는 비용이 이 금액에 이를 때까지는 진료비며 약값등의 의료비를 내가 내야한다는 거. 일년에 감기 한 두번 걸리거나 가벼운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한 달 보험료 20만원을 내고도 진료비, 약값을 스스로가 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아웃오브포켓 제약이 없는 보험을 살 수도 있다. 그럴려면 미국식 표현으로 팔과 다리쯤은 팔아야할 게다 (it costs an arm and a l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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