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한 단상

오래간만에 다닐로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몇 주 전 제프의 집들이 파티에서 잠깐 어울리기는 했지만, 같이 느긋하게 저녁을 먹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2월에 잠깐 같이 했던 프로젝트 후 처음이니 말이다. 그는 잘 지내고 있는 듯 했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큰 스트레스가 없다고 했다. 다른 때보다 여유가 많아 요즘은 철학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내 니체의 허무주의,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카뮈, 카프카의 어려운 소설들 얘기를 했다. 영어로 말해야하는 제약이 있었지만, 아주 오래 간만에 즐겨본 지적인 대화였다.
종교에 대한 심한 회의가 들었던 고등학교 때 니체와 실존주의자들의 철학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야간자습이 끝나 혼자만의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잠들 때까지 긴 독서의 시간을 가졌었다.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그 때의 독서열은 순전한 지적 호기심 이상이었던 것 같다. 삶은 허무하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나름대로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열정이었다. 인생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장 순수하게, 그리고 제일 절실하게 던져보곤 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손 안에 들어가는 작은 문고판 철학책들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했다는 것이 철없는 시도로 보이지만, 그래도 어찌보면 아주 소중하고 기특한 경험이기도 한 것 같다.
텔레비젼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었고, 12시까지 계속되는 학원 생활도 없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가족들도 떨어져 있었다. 같은 고향에서 온 친구들까리만 어울리는 텃새가 심한 동네에서, 혼자 그 고등학교로 진학을 한 나는 수다를 떨 친구도 없었다.
교묘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공감을 일으키는 문고책들이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다. 우풍이 심한 겨울에는 온 몸을 두터운 겨울옷과 솜이불로 파묻고 시린 손만 내 놓은 채 그 어려운 책들을 한 장 한 장 넘겨가곤 했었다.
나 스스로 기특하다고 추켜세운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부끄러움때문이다. 늘 그러는 것처럼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는 있지만, 이젠 실용적인 책이 아니면 거의 책장을 들추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철학책은 고사하고 사회, 인문학책은 갈수록 손이 가질 않는다. 입에 풀칠하기 바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나 스스로를 자책할 것까지는 없지만, 은근히 다닐로의 그런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하지만 우울해질 것까지는 없는 듯 하다. 삶은 시간과 함께 계속되기 때문이다. 비록 심오한 철학책들을 읽어 본 지는 십수년이 되었지만, 그 동안 나는 삶의 다른 모습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면서 다른 모습으로 나름 나이 먹어온 것이리라.
물론, 어렵겠지만 이제 책을 좀 더 많이 읽자는 결심으로 나 스스로를 고무시키려한다. 고풍스러운 문고책으로 손길을 돌리고 싶지만, 이 곳에서는 그게 어렵거나 돈이 많이 든다. 우선은 한국책을 소장한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일부터 해야겠다.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이다.
1년이 넘도록 다닐로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체중 감량이었고, 그는 꾸준히 진전을 보여왔다. 이번에 보았을 때는 그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년 여름부터 계속된 그의 체중 감량 노력에 그는 이제 15킬로는 뺀 듯 하다. 살만 뺀 것이 아니라 적절히 근육을 키우면서 말이다. 그는 헬쓰 모델이 될 정도의 몸매를 원한다고 했다. 그의 대단한 의지력에 나는 한참 감동을 한다.
진심이 있으면 통한다. 이제 책을 많이 읽으며 영혼을 풍부히 하겠다는 진심을 지켜가자.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말이다. 스스로를 감동시킬 때이다.

- 인생은 결국 시지프스의 신화인 것이냐고 묻는 다닐로에게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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